월 1.5억 매출, 흑자 전환이 코앞인데 왜 불안한가
- 03 Dec, 2025
월 1.5억 매출, 흑자 전환이 코앞인데 왜 불안한가
숫자는 좋은데
어제 CFO가 보고했다. 이번 달 매출 1억 5,200만원. 지난달보다 12% 올랐다.
“대표님, 이대로면 다음 달 흑자 전환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다. 2년 동안 기다렸던 순간.
그런데 밤에 잠이 안 온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엑셀을 다시 열었다. 숫자를 확인했다. 틀린 게 없다. 변동비 계산도 맞다. 고정비도 맞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2012년에도 이랬다. 첫 번째 회사. 소셜커머스.
“대표님, 이번 달 손익분기점 넘었습니다!”
그때도 좋았다. 팀원들이랑 치킨 먹었다. 소주 한 잔 했다.
3개월 후 경쟁사가 500억 투자 받았다. 우리 고객 싹쓸이 해갔다. 6개월 후 문 닫았다.
2017년에도 비슷했다. 두 번째 회사. O2O.
“대표, 월 1억 찍었어요!”
그때도 기뻤다. 진짜 기뻤다. ‘이번엔 된다’ 싶었다.
코로나가 왔다. 3주 만에 매출 80% 증발. 6개월 버텼다. 안 됐다.
그래서 지금 못 믿는다. 숫자가 좋아도.
성공은 확정되기 전까지는 환상이다
요즘 입버릇이 생겼다. “아직 모른다.”
직원들이 물어본다. “대표님, 이번엔 되는 거죠?”
“아직 모른다. 더 지켜봐야지.”
표정이 어두워진다. 사기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알고 있다. 리더가 불안하면 팀도 불안하다는 거. 그래도 못 속인다.
예전에는 달랐다. 20대 후반, 첫 창업 때.
“우리 1년 안에 100억 매출 찍는다!”
근거 없는 자신감.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그때는 그게 좋았다.

지금은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생각한다.
“매출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 “만약 떨어진다면” → “경쟁사가 공격한다면” → “투자자들이 등 돌린다면”
멘토가 말했다. “장 대표, 너무 방어적이에요.”
안다. 그래도 못 고친다.
두 번 망하면 이렇게 된다. 조심성이 몸에 밴다. 낙관을 못 한다.
성공은 눈으로 확인해야 믿는다. 통장에 돈 들어와야 믿는다. 그것도 3개월은 지켜봐야.
불안의 실체
왜 불안한지 정리해봤다. 새벽에 노트에 썼다.
1. 타이밍 42살이다. 이번에 실패하면 재기 어렵다. 20대처럼 ‘다시 하면 되지’ 할 나이 아니다.
투자자들도 안다. “장 대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겠네요.” 농담처럼 던진다. 웃고 넘긴다. 근데 사실이다.
2. 책임감 직원 10명. 다들 날 믿고 왔다. 연봉 낮춰받고 스톡옵션 받았다.
전 회사 직원들 생각난다. 폐업할 때 눈빛. 미안하다고 백 번 말했다. 소용없었다.
지금 팀원들한테 그러면 안 된다. 그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3. 패턴 반복 공포 두 번 다 비슷했다. 잘 되다가 변수 하나로 무너졌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지금 잘 되는 게 오히려 무섭다. ‘또 뭐가 터지려나’ 싶다.

4. 성공의 무게 실패는 익숙하다. 두 번 했으니까. 어떻게 수습하는지 안다.
근데 성공은 모른다. 엑싯 경험 없다. 흑자 회사 운영 경험도 없다.
성공하면 뭘 해야 하지? 어떻게 유지하지? 더 큰 책임 오는 거 아닌가?
웃긴 고민이다. 성공이 두렵다니.
아내의 말
어제 저녁에 아내한테 말했다.
“흑자 전환 코앞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내가 웃었다. “당연하지. 당신 두 번 망했잖아.”
”…”
“근데 그래서 이번엔 더 잘하고 있는 거 아니야? 예전처럼 무모하게 안 하잖아. 신중하게 하잖아.”
그렇긴 하다.
예전에는 투자 받으면 바로 썼다. 마케팅비 펑펑. 직원 막 뽑고.
지금은 다르다. 현금 흐름 주단위로 체크. 고용 신중하게. 마케팅 ROI 계산하고 집행.
“불안한 게 나쁜 게 아니야. 그게 당신 무기야.”
아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불안해서 더 꼼꼼하다. 실패가 두려워서 더 준비한다. 과거 때문에 현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
오늘 아침 회의. 마케팅팀 막내가 발표했다.
“대표님, 이번 캠페인 ROI 250%입니다. 계속 집행할까요?”
“좋아. 근데 예산 20%만 늘려. 갑자기 키우면 비효율 생긴다.”
예전 같으면 “100% 늘려!” 했을 것이다. 지금은 안 그런다.
팀원들이 좀 답답해한다. 알고 있다. ‘대표가 너무 보수적이다’ 속으로 생각한다.
근데 이게 맞다. 제 경험상.
점심 먹으면서 CTO가 물었다.
“형, 흑자 되면 뭐 하고 싶어?”
생각해본 적 없다. 그냥 ‘망하지 않는 것’ 생각만 했다.
“글쎄. 팀원들 보너스 줘야지.”
“형 자신한테는?”
”…”
없다. 하고 싶은 게.
그냥 이 회사가 3년, 5년, 10년 가는 거. 그게 목표다.
화려한 엑싯 아니어도 된다. IPO 안 해도 된다.
그냥 망하지 않고 계속 가는 회사. 직원들 월급 꼬박꼬박 주는 회사. 고객들이 만족하는 회사.
그거면 성공이다. 제 기준으로는.
불안을 연료로
퇴근길에 깨달았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흑자 되어도 불안할 것이다. 시리즈B 받아도 불안할 것이다. 매출 10억 되어도 불안할 것이다.
그게 제 체질이다. 두 번의 실패가 만든 체질.
근데 이게 나쁜 건 아니다.
불안하니까 방심 안 한다. 불안하니까 준비한다. 불안하니까 최악을 대비한다.
20대 때는 자신감이 연료였다. 지금은 불안이 연료다.
다를 뿐이다.
내일도 새벽에 깰 것이다. 엑셀 열어볼 것이다. 숫자 확인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