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때의 심리 상태
- 02 Dec, 2025
42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때
서른두 살 때와 지금
서른두 살 때 첫 번째 회사를 망쳤다. 그때는 달랐다. 패배감보다 분노가 컸다. “다시 해야지”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떴다. 나이가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아내도 떠났고, 빚도 있었지만, 몸과 마음에는 탄력이 있었다. 다음 기회는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올 거라고.
지금은 다르다. 서른일곱 살에 두 번째 회사를 폐업했을 때, 문득 공포가 들었다. “이게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무섭지 않나.
42살이 되니까 그 공포가 구체적으로 변했다.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통계처럼 느껴진다. 창업가들 보면 대부분 30대 초반에 성공하거나 이미 물러난다. 40대 중반에 세 번째 회사를 운영 중인 사람은 드물다. 멘토들도 슬쩍 말한다. “이번엔 좀 보수적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끄덕인다.

의사결정이 느려졌다
작년 이맘때 새로운 기능 개발을 놓고 회의했다. 엔지니어는 “3주 안에 출시 가능합니다”라고 했다. 마케팅 팀장도 “지금이 타이밍입니다”라고 했다. 경영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주일을 더 생각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돌렸다. “만약 버그가 있으면?” “만약 사용자가 안 받아들이면?” “개발 비용이 예상보다 50% 오버되면?” 팀은 기다렸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 머리 속에서는 ‘2년 전 O2O 서비스 망하던 그 순간’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는 걸.
결국 2주를 더 걸려서 기능을 완성했고, 출시했고, 반응은 좋았다. 내 조심스러움이 맞았나? 아니다. 타이밍을 놨다. 경쟁사가 먼저 비슷한 기능을 내놨다. 우리가 나왔을 땐 “후발주자”가 되어 있었다.
이게 현명한 리스크 관리인가, 아니면 겁먹은 노인네의 우물쭈물인가.
신입 대표들 보면 대는 대로 던진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할 수 있지 뭐”라고 한다. 나는 “할 수 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라고 한다. 같은 상황인데 머리 위의 단어가 다르다.
밤 11시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난다. 나 자신한테.

“이번에도 실패하면”
재혼 아내는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냐고.”
처음엔 슬쩍 했다. “괜찮아, 이번엔 다르다”고 위로했다. 근데 자기 자신도 확신이 없으면 상대한테 보인다. 아내는 지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물어본다. “이번 달 매출은 어디쯤이야?” “투자자가 뭐라고 했어?” 안전장치를 확인하는 거다. 나한테도 이미 한 번 크래시를 봤으니까.
금융권 친구는 더 직설적이었다. “장 대표, 솔직히 42살에 또 실패하면, 취업 안 될 거 알지?” 그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거다. 몸으로 아는 거다.
시리즈A에서 30억을 받았을 때도 환호하지 못했다. 투자자들이 “이미 두 번 실패했지만, 넌 다시 일어섰으니까”라고 했을 때,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그 뒤로 밤새 “그들이 날 얼마나 믿는 건가”를 계산했다. 너무 많이 기대받으니까 더 무섭다.
첫 번째 실패할 때는 채무가 문제였다. 돈을 갚아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명예가 문제다. 아들은 중학생이다. 언젠가 학교에서 누군가 “너 아버지 또 망한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밤을 샌다.
“장 대표, 너 이거 하면 망할 수도 있는데?”라는 질문에 다섯 해 전에는 “네, 알겠습니다. 해봅시다”라고 답했다. 지금은 “네, 리스크를 더 보겠습니다”라고 한다. 누가 변했나. 나다.

체력도 다르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여전히. 근데 체력이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30대 때는 밤 2시에 자고 아침 5시에 일어나도 괜찮았다. 회의, 미팅, 또 회의. 코드 리뷰. 투자자 피칭. 그 다음날도. 일주일을 그렇게 살았다. 몸이 받아줬다.
지금은 저녁 8시를 넘기면 머리가 흐릿하다. 의사결정 질이 떨어진다. 예전처럼 야근하는 건 못 한다. 아내가 “밤 10시까진 일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엔 거역했다. “사업이 이렇게 따뜻한 업무 시간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근데 3개월 지나니까 효율이 올랐다. 쉼을 알게 되니까.
그런데 이게 “현명함”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건 아닐까.
젊은 대표들은 여전히 밤 2시, 3시를 산다. SNS에 올라온다. 그들의 에너지가 눈에 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분별력 있는 경영”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아, 난 이제 그렇게 못 한다”는 걸 느낀다.
체력 부족은 결국 의사결정 스피드로 이어진다. 빠른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라고 한다. 신중함이라고 포장되지만, 사실은 “지쳐있어서 다시 체력을 모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는 이유
지난주에 신입 대표가 멘토링을 요청했다. 25살. 벤처캐피털에서 받은 시드머니가 5억이라고 했다. 흥분해있었다.
나는 그 녀석을 봤다. 나 자신을 봤다. 열다섯 해 전 나를 말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떨렸다. 공포가 아니라.
“실수하지 말아”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보수적인 조언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 던져봐. 실패해도 괜찮다. 내가 증명한다.”
이 말이 거짓일까. 내가 “괜찮다”고 한 것 때문에 그 신입이 우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책임감이 있다. 책임감이 있으니까, 물러설 수 없다.
처음 두 번 실패한 게 아깝지 않다는 건 거짓이다. 밤중에 가끔 “그때 이렇게 했으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패가 없었으면 지금 이 녀석들을 봤을 때 “저 에너지가 뭔지” 몰랐을 거다.
42살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게 공포인지, 책임감인지, 아직도 모른다.
[IMAGE_4]
보수와 진격의 줄타기
월요일 아침 회의.
신입 디자이너가 기획안을 들고 왔다. “UI를 완전히 뜯어고쳐봤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사용자 만족도가 올라갈 거 같습니다.”
내 머리는 세 가지를 동시에 계산했다. 첫째, 개발 기간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 둘째, 그 사이 경쟁사가 뭘 할 것인가. 셋째, 만약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팀은 내 얼굴을 봤다. 나는 “좋은데, 일단 기존 버전으로 먼저 런칭하고, 다음 업데이트에서 UI를 개선하는 건 어때?”라고 했다.
회의 후 그 디자이너가 내 옆에 왔다. “혹시 아이디어가 별로였나요?” 내가 “아니야, 좋은 아이디어다. 근데 지금은 타이밍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뭔가 놀렸다. 내 말에 대항하지 않은 것 같은. 예전의 나였으면 “한 번 해봅시다”라고 밀어붙였을 텐데, 이 팀은 나한테 이미 “망한 사람”이라는 라벨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내 말을 의심하지 않는 건가.
밤 11시에 그 UI 기획안을 다시 봤다. 정말 좋았다. 사용자 만족도가 올라갔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 왜 난 “아직 아니다”라고 했을까.
보수적으로 변하는 게 현명함일까, 겁음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과가 정해준다. 성공하면 현명함이고, 실패하면 겁음이다. 그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IMAGE_5]
재기의 문
인생에서 재기 기회가 몇 개나 되는지 아는가.
창업가들 사이에선 보통 이렇게 말한다. “벤처캐피털은 대개 한 번의 실패는 봐준다. 두 번은 보기도 한다. 세 번은…”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투자자들도 이미 내 이력을 알고 있다. 회의실에 앉으면 그들의 눈빛이 다르다. 첫 번째 대표들이 받는 것과는 다른 눈빛. 그들은 “이 사람이 재기할 능력이 있는가”를 본다. “이 사람이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시리즈A 30억은 내 재기 기회였다. 그게 마지막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느낀다. 다음 번 펀딩이 있을까? 이번이 실패하면?
그래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운동을 한다. 체력을 지킨다. 월 매출이 1.5억이 되었을 때도 쌍수를 들지 않았다. 흑자 전환이 목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만약 다음 달에 매출이 떨어진다면”을 먼저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가 “신중함”인가, “강박”인가.
아내는 “너 이러면 너 스스로 기회를 버리는 거 아냐?”라고 했다. 맞다. 알고 있다. 그런데 뭐 어쩌나. 42살, 남은 게 이것뿐인데.
[IMAGE_6]
겁음과 현명함의 차이
가끔 헷갈린다.
투자자와 커피를 마셨다. 그는 성공한 창업가다. 첫 번째에 성공했고, 두 번째 회사도 좋다고 말했다. 공통점은 뭐냐고 물었다.
“장 대표, 둘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차이는 타이밍이 아니라 사람이다. 과감한 사람과 신중한 사람의 차이. 근데 나이 들면서 과감함이 떨어진다. 그게 문제다.”
그 사람은 50대다. 여전히 창업을 생각한다고 했다. “다시 해도 될 것 같은데, 겁이 나더라. 이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킬 게 많아진 거야.”
내가 “그럼 어쩌냐”고 물었다.
“그냥 한다. 겁내면서도 한다. 그게 어른의 방식이다”라고 그가 말했다.
근데 그건 뭐하는 말인가. 겁내면서도 한다? 그럼 보수인가, 진격인가.
밤 2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겁음과 현명함의 차이는 뭘까.
결론은 없다. 지금으로선.
49년뒤
다섯 해 뒤에 어떻게 될까.
성공하면? 이 일기는 내 회고록의 한 장이 될 거다. “42살 때 두려웠던 그 시절.” 독자들은 “역시 이 사람은 달랐다”고 할 거다.
실패하면? 내가 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아, 그때 왜 더 과감하지 못했나”라고 후회할 거다. 아니면 “그때 좀 더 신중해야 했는데”라고. 둘 다 할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운동하고, 출근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팀원들과 밥을 먹고, 투자자들과 만나고, 밤 11시에 자고, 주말에 한 번은 쉬는 것.
그리고 가끔, 매우 가끔, 젊은 창업가들이 내 앞에서 “무섭다”고 할 때, 그들의 눈을 봐주는 것. 그리고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이 말이 거짓이든 아니든, 누군가는 이 말을 필요로 한다. 내가 두 번 실패했으니까, 내 말이 어딘가 무겁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건 피곤하다. 진짜 피곤하다.
하지만 못 놓는다.
겁이 나면서도 계속 가는 게 어른의 방식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