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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 05 Dec, 2025
투자자 미팅 저녁에 마주친 자신의 모습
5시 반 알림 투자자 저녁 약속. 6시 반 청담동. 출발 시간 계산했다. 1시간 전에 알림 설정해뒀다. 벌써 세 번째 확인이다. 예전엔 이런 자리가 설렜다. 돈 받을 생각에. 지금은 다르다. 돈 받은 후가 더 무겁다. 매출 보고서 파일 열었다. 다시 확인. 1.5억. 지난달보다 5% 증가. 나쁘지 않다. 그런데 충분한가.거울 속 42세 화장실 거울 봤다. 셔츠 매만졌다. 넥타이는 안 맨다. 너무 격식 차리는 것 같아서. 턱선이 예전 같지 않다. 피곤해 보인다. "이번엔 다르다" 거울 속 나한테 말했다. 첫 번째 때도 그랬다. 투자자 앞에서 자신만만했다. 3년 후 사과 전화할 줄은 몰랐다. 두 번째 때는 더 조심했다. 그래도 망했다. 이번엔 정말 다른가. 아니면 또 착각인가. 세수했다. 찬물로. 차 안 30분 택시 탔다. 운전 집중 안 된다. PPT 다시 봤다. 핸드폰으로. MAU 12만. 지난 분기 대비 20% 증가. 재구매율 35%. 업계 평균 28%. 번아웃율 8%. 목표는 5% 이하.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근데 해석은 거짓말할 수 있다. "성장세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느립니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투자자는 김 대표다. 50대 중반. 세 개 펀드 운영. 나한테 7억 넣었다. 두 번 망한 거 다 안다. 그래도 투자했다. "장 대표님 끈기를 봅니다" 그때 그 말 기억난다. 끈기. 좋은 말이다. 근데 고집이랑 뭐가 다른가.레스토랑 로비 15분 일찍 도착했다. 일부러 그랬다. 먼저 와서 마음 정리하는 게 좋다. 로비 소파에 앉았다. 주변 봤다. 다들 비슷하다. 정장. 노트북. 진지한 표정. 옆 테이블 대화 들렸다. "시리즈B 목표는 100억입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자신감 넘친다. 부럽다. 저 자신감. 나도 저랬다. 32살 때. 지금은 다르다. 실패가 뭔지 안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는 게 뭔지 안다. 투자금 날리는 게 뭔지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조심스러워서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렵다. 김 대표 입장했다. 일어섰다. 악수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사교적 대화 3분. 본론으로 들어갔다. 숫자 위의 이야기 "현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태블릿 켰다. 자료 보여줬다. 매출. MAU. 재구매율. 번아웃율. 김 대표가 고개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나쁘지 않다. 좋다는 말은 아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잠깐 멈췄다. "목표보다는 느립니다" 김 대표 표정 봤다. 변화 없다. "어느 부분이 병목인가요?" "마케팅 CAC가 예상보다 높습니다. 20% 정도" 숫자 정확히 말했다. 얼버무리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달랐다. "곧 해결됩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다음 달엔 좋아질 겁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두 번 망하고 배웠다. 투자자한테 거짓말은 단기 해법이다. 결국 들킨다. 그때 신뢰가 다 무너진다. "해결 방안은요?"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중 줄이고 있습니다. 콘텐츠 마케팅 강화 중입니다. 3개월 안에 CAC 15% 낮출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했다. 기한도 명확히. 김 대표가 물었다. "확신하시나요?" 정직하게 답했다. "70% 확신합니다. 나머지 30%는 시장 변수입니다" 100% 확신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건 거짓이다. 김 대표가 웃었다. "그 솔직함이 좋습니다"식사 중간 스테이크 나왔다. 먹으면서도 대화 계속됐다. 김 대표가 물었다. "힘드시죠?" 갑자기 사적인 질문이었다. "힘듭니다" 솔직히 답했다. "두 번 실패했으니까요. 이번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큽니다" "그 압박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 대표 말이다. "압니다" 고개 끄덕였다. "그래서 주말 하루는 완전히 쉽니다. 안 그러면 못 버팁니다" 김 대표가 고개 끄덕였다. "제가 투자한 이유 아세요?" 고개 저었다. "장 대표님은 실패를 배움으로 바꿨습니다. 그게 보였어요" 가슴이 뜨거웠다. 눈시울이 좀 뜨거웠다. 티 안 나게 물 마셨다. 디저트 시간 커피 나왔다. 분위기가 편해졌다. 김 대표가 말했다. "다음 투자 유치 생각하시죠?" "시리즈B요?" "네. 언제쯤 생각하세요?" "1년 후입니다. 흑자 전환 후에요" 명확히 답했다. "목표 금액은?" "60억 정도 생각합니다" 김 대표가 물었다. "그때도 제가 리드할 수 있을까요?" 고마운 말이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악수했다. 이번엔 더 따뜻했다. 귀가길 택시 9시 반. 집으로 가는 길. 미팅 복기했다. 잘했다. 솔직했다. 숫자 정확했다. 과장 안 했다. 불안 숨기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달랐다. "다 잘 됩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걱정 마세요" 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두 번 망했다. 이번엔 다르다. 불안해도 말한다. "70% 확신합니다" 느려도 인정한다. "목표보다 느립니다" 그게 42세 창업가의 방식이다. 두 번 망한 사람의 방식이다. 더 솔직해졌다. 덜 거만해졌다. 더 현실적이 됐다. 그게 성공 확률을 높인다고 믿는다. 집 앞 현관문 열었다. 아내가 물었다. "어땠어?" "괜찮았어" 신발 벗으며 답했다. "솔직하게 말했어. 다 좋아하시더라" "잘했네" 아내가 웃었다. 소파에 앉았다. 피곤했다. 핸드폰 봤다. 김 대표한테 문자 왔다. "오늘 좋았습니다. 장 대표님 응원합니다" 답장 보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핸드폰 내려놨다. 거울 봤다. 거실 벽에 걸린. 42세 내가 보였다. 두 번 망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불안하다. 두렵다. 그래도 간다. 이번엔 솔직하게. 이번엔 현실적으로. 그게 내가 배운 전부다.투자자 앞에서 100% 확신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70%라고 했다. 그게 진짜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