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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 03 Dec, 2025
첫 번째 창업 실패 후 이혼까지, 그 시절을 돌아보며
첫 번째 창업 실패 후 이혼까지, 그 시절을 돌아보며 32살, 모든 게 무너지던 날 2015년 3월. 소셜커머스 법인 청산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32살이었다. 3년 반 달렸다. 남은 건 2억 빚이었다. 집에 들어갔다. 아내가 안 보였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엄마는?" 친정에 갔다더라. 언제 올지 모른다고. 4살 아들이 말했다. 그날 밤 라면 끓였다. 아들이랑 둘이 먹었다. TV 소리만 들렸다. 전처한테 미안하다. 지금도.회사가 망하면 결혼도 망한다는 착각 창업하면서 아내한테 말했다. "3년만. 3년만 견디면 돼." 거짓말이었다. 나도 몰랐다. 3년이 얼마나 긴지. 첫해는 주 7일 일했다. 아들 돌 때 회사 있었다. 사진으로 봤다. 둘째 해는 더 심했다. 명절에 투자 미팅 잡았다. 시댁 안 갔다. 셋째 해는 사투였다. 매출은 안 나오고, 직원 월급은 밀리고. 아내한테 말했다. "조금만 더. 곧 턴어라운드 온다." 또 거짓말이었다. 턴은 안 왔다. 추락만 있었다. 되돌아보면 명확하다. 회사가 망해서 이혼한 게 아니다. 내가 남편이길 포기했다. 아빠이길 포기했다. 그래서 망했다. 창업가 코스프레했다. '가족보다 회사가 중요'한 척. 실제론 둘 다 못 지켰다. 회사도 망했고, 가족도 잃었다.이혼 조정 신청서에 쓰인 이유들 "배우자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정서적 유대감 상실" "양육 분담 불균형" 법원 조정위원이 물었다. "합의 이혼입니까?" 그렇다고 했다.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싸우지 않았다. 그게 더 슬펐다. 싸울 만큼 서로한테 관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양육권은 아내. 면접교섭권은 나. 한 달에 두 번. 위자료 3000만원. 빚쟁이한테 3000만원이 어디 있나. 분할로 갚기로 했다. 지금도 갚고 있다. 2년 남았다. 아들한테 뭐라 설명했는지 기억 안 난다. "아빠는 다른 집에 살아. 대신 자주 만나."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아들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빌라 반지하 구했다. 보증금 500만원짜리. 짐은 캐리어 하나였다. 옷하고 노트북. 32살에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아니, 그보다 뒤였다. 혼자 사는 법을 다시 배우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반. 취업했다. IT 스타트업 PM. 연봉 4500만원. 창업가가 직장인 되니까 이상했다. 퇴근이 있었다. 저녁 7시에 집 갔다. 할 게 없었다. TV 켰다. 채널 돌렸다. 껐다. 치킨 시켰다. 혼자 다 못 먹었다. 반 남았다. 주말이 제일 길었다. 토요일 오전 11시에 눈 떴다. 일요일 저녁 6시까지 뭐 했는지 기억 안 난다. 아들은 한 달에 두 번 만났다. 놀이공원 갔다. 영화 봤다. "아빠 언제 집 와?" 몰라. 언제 오냐고 하더라. 대답 못 했다. 전처한테 문자 왔다. "양육비 이번 달 못 보내?" 50만원. 월급날 바로 보냈다. 사과했다. 미안하다는 말 많이 했다. 그것밖에 못 했다.두 번째 창업, 그리고 지금의 아내 2017년 만났다. 친구 소개. 프리랜서 작가. 34살. 결혼 안 해봤다. 첫 만남에서 말했다. "나 이혼했어. 애 있고. 빚도 있어." "알아." 그녀가 웃었다. "친구한테 다 들었어." 두 번째 만남에서도 말했다. "또 창업하려고. O2O 서비스." "위험한 거 아냐?" "위험하지." 솔직했다. 이번엔 거짓말 안 하기로 했다. 3개월 만났다. 청혼했다. "결혼하자. 근데 조건 있어." 그녀가 물었다. "뭔데?" "첫째, 회사 일 너한테 하소연 안 할게. 둘째, 주말은 무조건 너랑 보낼게. 셋째, 저녁 9시 넘으면 집 올게. 못 오면 미리 말할게." "넷째는?" "애는... 당분간 안 만들자. 내가 준비 안 됐어." 그녀가 고민했다. 2주 생각한다고 했다. OK 했다. 2018년 봄에 결혼했다. 왜 이번엔 다를 수 있었나 약속 지켰다. 대부분. 저녁 9시 퇴근 못 지킨 날도 있었다. 그래도 80%는 지켰다. 주말은 100% 지켰다. 투자자가 만나자고 해도 "주말은 안 돼요"라고 했다. 회사 얘기는 안 했다. 힘들어도 안 했다. 대신 그녀 얘기 들었다. 작업실 계약 문제, 클라이언트 고민. 처음엔 어색했다. 내 얘기만 하던 버릇이 있었다. 고쳤다. 들었다. 조언하려 하지 않았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게 다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가장 큰 차이는 이거다. 결혼이 회사 성공의 도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전처한테는 회사 성공하면 다 보상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참아. 나중에 잘되면 다 갚을게." 미친 생각이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나중이 무슨 의미냐. 지금 아내한테는 지금 최선을 다한다. 회사 잘되든 망하든, 오늘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는다. 그게 전부다. 그게 다다. 전처와 아들, 그리고 죄책감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예전엔 두 번이었다. 중학생 됐다. 만나기 싫어한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다고. 억지로 안 만난다. "아빠 만나기 싫으면 문자해. 괜찮아." 가끔 문자 온다. "이번 주는 학원 있어요." OK 한다. "알았어. 다음 달에 보자." 서운하냐고? 당연히 서운하다. 근데 내가 뭘 바라겠나. 4살 때 집 나온 아빠인데. 전처는 재혼했다. 2년 전에. 중소기업 부장이라던가. 아들이 말했다. "새 아빠 괜찮아." "그래? 잘됐다." "우리 아빠보다 집에 일찍 와." 칼이었다. 그냥 웃었다. "그렇구나. 좋겠다." 죄책감은 평생 갈 것 같다. 익숙해졌다. 가끔 아들 사진 본다. 전처 SNS에 올라온 거. 키 컸다. 나보다 크다. 얼굴은 나 닮았다. 행복해 보인다. 그거면 됐다. 내가 없는 가정이 더 행복하다면, 그게 맞는 거다. 이혼이 가르쳐준 것들 첫째, 회사는 핑계다. '회사 때문에'라고 말하는 순간, 선택한 거다. 회사를 선택하고, 가족을 포기한 거다. 솔직해져야 한다. "나는 회사가 더 중요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거짓말이 나쁜 거다. 둘째, 균형이란 건 없다. 워라밸이라는 말 싫어한다. 밸런스 같은 건 없다. 매 순간 선택할 뿐이다. 오늘은 회사, 내일은 가족. 중요한 건 비율이다. 8:2는 망한다. 6:4 정도는 돼야 한다. 나는 지금 6:4 유지한다. 회사 6, 가족 4.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버틸 만하다. 셋째, 성공은 변명이 안 된다. '나중에 성공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안 된다. 지금 망가진 관계는 나중에도 망가져 있다. 지금 안 만나는 아들은 나중에도 안 만난다. 지금 외로운 배우자는 나중엔 떠나 있다. 성공해도 혼자다. 실패하면 더 혼자다. 넷째, 사과론 안 된다. 미안하다고 100번 말해도 소용없다.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시간을 내야 한다. 존재해야 한다. 나는 전처한테 1000번 사과했다. 의미 없었다. 집에 안 들어갔는데 무슨 사과냐. 지금 아내한테는 사과 안 한다. 대신 집에 온다. 그게 사과다. 다섯째,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망해도 된다. 이혼해도 산다. 32살에 캐리어 하나 들고 반지하 들어갔다. 42살에 세 번째 창업하고, 재혼했고, 시리즈A 받았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기회는 또 온다. 단, 배워야 한다. 같은 실수 반복하면 안 된다. 나는 배웠다. 비싸게 배웠다. 그래도 배웠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제 저녁 8시 반에 집 갔다. 아내가 파스타 만들었다. 맛있었다. "회사는?" "글쎄. 그냥 그래." 더 말 안 했다. 그녀도 더 안 물었다. 밥 먹고 넷플릭스 봤다. 코미디 뭐였는지 기억 안 난다. 11시에 잤다. 평범한 하루다. 10년 전엔 꿈도 못 꿨던 하루. 이번 회사는 잘될 것 같다. 시리즈B도 얘기 나온다. 근데 잘 안 되면? 또 망하면? 괜찮다. 이번엔 혼자 망하진 않는다. 옆에 사람 있다. 그게 다르다. 전처한테 미안하다. 아들한테 미안하다. 평생 미안할 거다. 그래도 산다. 다시 시작한다. 조금 나은 사람으로. 42살이다. 늦지 않았다. 늦었어도 상관없다. 오늘 저녁엔 집에 간다. 그거면 됐다.회사 성공보다 집에 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32살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