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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퇴근, 과거의 나는 밤 12시까지 일했다

저녁 8시 퇴근, 과거의 나는 밤 12시까지 일했다

저녁 8시 퇴근, 과거의 나는 밤 12시까지 일했다 오늘도 8시에 나왔다 8시 05분. 사무실 불 끈다. 팀원들은 이미 다 갔다. 6시 반에 먼저 가라고 했다. 막내가 미안해하길래 "빨리 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 본다. 밀린 메시지 확인. 투자사 이사님 메시지. "내일 점심 괜찮으세요?" 괜찮다고 답장. 1층 로비 나서니 서늘하다. 11월이다. 패딩 입을 때가 됐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예전엔 이 시간에 저녁 먹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12시까지. 어떤 날은 새벽 2시. 지금은 8시면 끝이다. 집에 간다. 아내가 기다린다.첫 번째 실패, 몸이 알려줬다 2012년. 스물아홉. 첫 창업. 매일 밤 12시까지 일했다. 자랑이었다. "나 어제 3시에 잤어." 동료들이랑 경쟁했다. 누가 더 안 자나. 소셜커머스였다. 쿠팡 따라잡겠다고 했다. 웃긴다. 지금 생각하면. 직원 5명. 다들 20대. 체력 좋았다. 나도 좋았다. 하루 4시간 자도 괜찮았다. 2년차 되니 몸이 이상했다. 어지러웠다. 계단 오르면 숨 찼다. 병원 갔다. "과로입니다. 쉬세요." 안 쉬었다. 못 쉬었다.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망한다고 믿었다. 3년차. 회사 망했다. 투자 못 받았다. 시장이 포화됐다. 경쟁사가 너무 컸다. 망하던 날 밤.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3시까지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앉아 있었다. 집에 가니 아내(그때는 아내였다)가 자고 있었다. 옆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응급실 갔다. 공황장애였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몸이 신호를 보냈다는 걸. 안 깨달았다.두 번째 실패, 마음이 알려줬다 2017년. 서른여섯. 재기. 이혼하고 2년 뒤였다. 다시 시작했다. O2O 서비스. 배달 관련이었다. 이번엔 다르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찍 퇴근하겠다고. 10시에는 나가겠다고. 못 지켰다. 또 12시까지 일했다. 습관이었다. 내가 더 해야 성공한다고 믿었다. 직원들도 늦게까지 있었다. 내가 있으니까. 먼저 가기 미안해했다. 나도 "먼저 가"라고 안 했다. 분위기가 험악했다. 다들 피곤했다. 회의 때 짜증 났다. 사소한 것으로 싸웠다. 투자사에서 연락 왔다. "팀 분위기가 안 좋다는데요?" CFO가 퇴사 의사 밝혔다는 얘기였다. 놀랐다. CFO랑 얘기했다. "왜요?" 물었다. "대표님, 전 9시에 가고 싶어요. 근데 대표님이 계시면 못 가요." 충격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그 후로 바꾸려고 했다. 9시에 퇴근하겠다고 선언했다. 일주일 지켰다. 그다음 주에 또 늦게까지 있었다. 고쳐지지 않았다. 2019년. 코로나 왔다. 회사 망했다. 이번엔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근데 망할 때쯤엔 팀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들 떠났다. 나 혼자였다. 병원 또 갔다. 우울증이었다. 약 먹었다. 6개월. 그때 깨달았다. 오래 일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것. 지속 가능해야 한다는 것.세 번째 창업, 규칙을 정했다 2021년. 마흔. 다시 시작했다. 헬스케어 앱.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첫날 팀원들한테 말했다. "8시에 퇴근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예외 없습니다." 다들 놀랐다. "진짜요?" 물었다. "진짜"라고 했다. 규칙 정했다. 8시면 불 끈다. 주말엔 카톡 안 한다. 급한 일은 전화한다. 휴가는 꼭 쓴다.처음엔 불안했다. 경쟁사는 밤늦게까지 일한다는 얘기 들었다. 우리는 뒤처지는 거 아닌가. 망하는 거 아닌가. 참았다. 규칙 지켰다. 8시에 퇴근했다. 3개월 지나니 달라졌다. 팀 분위기가 좋았다. 회의 때 웃었다.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6개월 뒤 시리즈A 투자 받았다. 30억. 투자사 대표가 물었다. "비결이 뭐예요?" "8시에 퇴근합니다"라고 했다. 웃으면서 "농담 아니에요"라고 덧붙였다. 진짜였다. 팀이 건강해야 회사가 산다. 나 혼자 밤새워봤자 소용없다. 10명이 8시간씩 집중하는 게, 1명이 16시간 하는 것보다 낫다. 8시 퇴근이 주는 것들 요즘 루틴이 있다. 8시 5분. 사무실 나온다. 걸어서 집에 간다. 30분 걸린다. 그 시간이 좋다. 하루를 정리한다. 8시 40분. 집 도착. 아내가 저녁 준비해뒀다. 같이 먹는다. TV 본다. 넷플릭스. 요즘은 일본 드라마. 10시. 책 읽는다. 경영서 아니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다시 읽는 중. 11시. 잔다. 6시간 자려면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주말엔 일 안 한다. 토요일은 아내랑 시간 보낸다. 영화 보거나 전시 간다. 일요일은 혼자 시간. 운동하고 산책한다. 한 달에 한 번 전처 사이 아들 만난다. 저번 주에 만났다. 중학교 2학년. 키가 나보다 크다. 밥 먹으면서 얘기했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아빠 요즘 일찍 들어가?" 물었다. "응, 8시에"라고 했다. "좋겠다"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좋다는 게 뭘까. 아마 예전 내가 새벽에 들어가던 걸 기억하나 보다. 맞다. 좋다. 8시 퇴근은 좋다. 나약함이 아니라 선택이다 창업가 모임 간다. 한 달에 한 번. 후배들이 많다. 저번 달에 한 후배가 물었다. 스물여섯. 첫 창업 1년차. "형, 저 요즘 새벽 3시까지 일하는데, 이게 맞나요?" "안 맞다"고 했다. "근데 경쟁사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경쟁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3년, 5년, 10년 가야 한다. 새벽 3시까지 하면 1년 못 간다." "형도 예전엔 그렇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두 번 망했다." 조용해졌다. 다들 나를 봤다. "나 두 번 망했다. 첫 번째는 몸이 망가졌다. 두 번째는 팀이 무너졌다. 세 번째는 다르게 한다. 8시에 퇴근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온다." "그럼 일이 덜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오히려 더 된다. 집중력이 다르다. 8시간을 100%로 쓰는 게, 16시간을 50%로 쓰는 것보다 낫다." 다들 고개 끄덕였다. 근데 안 믿는 눈빛이었다. 알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경험해봐야 안다. 가끔 후배들이 연락한다. "형, 조언대로 했어요. 8시에 퇴근했어요. 근데 불안해요." "불안한 게 정상이다. 나도 아직 가끔 불안하다. 참아라. 3개월만." 3개월 지나면 바뀐다. 몸이 회복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팀이 건강해진다. 나약함이 아니다. 선택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선택이다. 오늘 밤 11시, 나는 잔다 지금 밤 10시 40분. 이 글 쓰고 있다. 11시에 자려고. 예전 같으면 지금 사무실이다. 혼자 남아서 일한다. 내일 회의 자료 만들고, 경쟁사 앱 분석하고, 투자사 보고서 쓴다. 지금은 집이다. 침대에 누워 있다. 아내는 옆에서 책 읽는다. 고양이(아내가 키우는)는 발치에서 잔다. 평화롭다. 회사는 돌아간다. 내가 없어도. 팀원들이 잘한다. 나보다 나은 부분도 많다. 내가 다 할 필요 없다.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운동한다. 8시에 출근한다. 하루 일한다. 8시에 퇴근한다. 이게 내 삶이다. 마흔둘의 삶이다. 두 번 망하고 배운 삶이다. 후회 없다. 이번엔 다르다. 오래 갈 수 있다. 그게 성공이다.8시 퇴근은 사치가 아니다. 생존이다.